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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아트센터 앞
에곤 쉴레 아트 센터 뜰

에곤 쉴레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입니다. 저는 오래전 비엔나를 처음 여행했을 때 에곤 쉴레의 그림을 처음 보고 화풍에 반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왜 에곤 쉴레 아트센터가 체스키 크룸로프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에곤 쉴레의 어머니의 고향이 체스키 크룸로프이기 때문입니다. 쉴레는 어린시절과 아카데미 시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합니다. 1911년 대도시인 비엔나로부터 크룸로프로 이사해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1912년 다시 비엔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주로 인물화를 많이 보았는데 체스키 크룸로프를 배경으로한 풍경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쉴레의 아버지는 당시 철도청 간부로경제적으로 부유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불화, 여동생과의 근친 의혹 등 정서적으로는 불안한 가정이었습니다.

에곤쉴레 가족사진

에곤 쉴레 군인 시절. 부유한 집안 덕분이었던지 군복무 시절 그림 전시도 하고, 서기로 일했다고 합니다.

에곤 쉴레의 아내 에디트 쉴레(Edith Schiele)

에곤과 에디트는 결혼한지 약 3년이 시간이 흐른 뒤, 임신 중이었던 에디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 에곤 역시 스페인 독감으로 28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에디트가 사망한 후 사흘간 에곤은 에디트를 그렸는데, 결국 유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그림은 바로 "줄무늬 옷을 입은 에디트 쉴레의 초상"입니다.

줄무늬 옷을 입은 에디트 쉴레의 초상(1918)
에곤 쉴레의 데스 마스크

비엔나에서 사망했다는 증명서

에곤 쉴레의 방처럼 꾸며놓은 공간도 있었습니다.

에곤 쉴레의 독특한 필체

클림트는 에곤 쉴레의 스승이자 후원인이었다고 합니다. 1918년 2월 클림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사망을하게 되자 에곤 쉴레는 클림트의 마지막 모습을 스케치로 남겼습니다.

에곤 쉴레 전시회를 본 후 전체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에곤 쉴레의 원작이 단 한편이 없더라도 스토리를 좀더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시청각 자료를 잘 활용해서 전시회를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곤 쉴레의 엽서나 메모의 경우에도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기체를 타이핑해서 독일어, 체코어, 영어로 설명을 해놓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에곤 쉴레 전시회 이외에도 다른 작가들의 전시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2019.03.23 - [유럽 여행/오스트리아] - 비엔나 레오폴드 뮤지엄 - 에곤 쉴레 100주년 기념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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